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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돌탑 ​노연화 ​ 절에 가는 길 옆 돌멩이로 쌓아 올린 탑 건드리면 무너질 듯 간당간당 ​ 쌓다가 무너져도 늘 그 높이만큼 태풍 지난 후에도 딱 그만큼 ​ 답답한 세상 돌멩이 쌓아 공들인다고 뭔 소원이 이루어질까 싶은데 ​ 저것이라도 밀어 쓰러뜨리면 묵은 체증이 뚫릴 것 같아 눈빛으로 쓱 밀어보는데 ​ 그깟 무너뜨려서 만사형통이면 우주도 새로이 만들겠다 그만 나도 돌멩이 하나 집어 올렸다 2020. 4. 8.
봄동꽃 봄동꽃 ​ 노연화 ​ ​ 사월 금당도에 봄동꽃 다 피었다 쓴웃음으로 돌아서는 농부의 어깨에 눈치도 없이 금빛으로 쌓이는 햇볕 바다도 그 빛을 베끼느라 반짝거린다 ​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배추값이 똥값이라 똥꽃이 피어 오지게도 무더기 무더기 향긋한 똥꽃 향기가 풀풀 언덕을 넘는다 ​ 희망이 얼마쯤 거짓말이라도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하는 힘인데 가끔은 마술에서 깨면 슬프다 하아,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어쩔거나 ​ ​ ​ * (금당도/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에 딸린 섬) 2020. 2. 9.
석양 2020. 2. 9.
호상(好喪)​ 호상(好喪)​ 노연화 ​ 오월 허공에 눈 온 듯 하얀 꽃을 매단 아까시꽃 휘청 가지가 출렁이는데 바람이 일 때마다 향기가 쏟아진다 ​ 오월에 유난히 조문(弔問)이 잦다 장수(長壽)라 호상(好喪)이겠으나 뉘 집 상가에도 호상이란 없다 ​ 여느 꽃은 필 때 향기가 진동한다 아까시꽃은 질 때 향기가 절정이다 장례식장 안까지 꽃향기가 흠씬하다 ​ 좋은 계절에 세상을 뜬다는 것은 망자나 산자나 복이거나 슬픈 일이다 죽음에 관한한 봄은 이중성이다 ​ 거짓말처럼 어느 날 꽃이 지더라도 거짓말처럼 남은 자들은 또 살아간다 다만 행복했던 날들을 가끔 추억할 뿐이다 ​ ​ 2020. 2. 9.
질문 질문 ​ 노연화 ​ ​작년에 스러진 꽃 올해 다시 피어나는 것을 보다 ​ 죽음에서 새삶이 생성되는 이치 혼돈 속에서 질서가 생겨난다 ​ 통합되고 분리되는 윤회의 고리 나는 지금 어디쯤 걸어가고 있나 ​ 밤이 있어 새벽이 탄생하니 밀알이 썩어야만 새순이 돋는구나 ​ 분수에 없는 부귀영화를 바랐던가 짧은 생애 명예와 권력을 탐했던가 ​ 예순이라는 나이도 조금 늙은 척하며 자주 생각이 깊어지는 까닭에 ​ 나 다시 돌아갈 곳 어디인가 묻느니 지나가는 까마귀가 시끄럽다 짖는다 ​ 다 부질없다 의문조차 욕심이려니 자족하고 살면 두려움도 깃털같아 ​ 고맙고 미안하고 황송할 따름 이생에서 지금 존재한다는 것이! ​ ​ 사족ㅡ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를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자 심미아스와 케베스.. 2020. 2. 8.
걷는 사람 2020.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