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3 돌탑 돌탑 노연화 절에 가는 길 옆 돌멩이로 쌓아 올린 탑 건드리면 무너질 듯 간당간당 쌓다가 무너져도 늘 그 높이만큼 태풍 지난 후에도 딱 그만큼 답답한 세상 돌멩이 쌓아 공들인다고 뭔 소원이 이루어질까 싶은데 저것이라도 밀어 쓰러뜨리면 묵은 체증이 뚫릴 것 같아 눈빛으로 쓱 밀어보는데 그깟 무너뜨려서 만사형통이면 우주도 새로이 만들겠다 그만 나도 돌멩이 하나 집어 올렸다 2020. 4. 8. 봄동꽃 봄동꽃 노연화 사월 금당도에 봄동꽃 다 피었다 쓴웃음으로 돌아서는 농부의 어깨에 눈치도 없이 금빛으로 쌓이는 햇볕 바다도 그 빛을 베끼느라 반짝거린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배추값이 똥값이라 똥꽃이 피어 오지게도 무더기 무더기 향긋한 똥꽃 향기가 풀풀 언덕을 넘는다 희망이 얼마쯤 거짓말이라도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하는 힘인데 가끔은 마술에서 깨면 슬프다 하아,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어쩔거나 * (금당도/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에 딸린 섬) 2020. 2. 9. 석양 2020. 2. 9. 호상(好喪) 호상(好喪) 노연화 오월 허공에 눈 온 듯 하얀 꽃을 매단 아까시꽃 휘청 가지가 출렁이는데 바람이 일 때마다 향기가 쏟아진다 오월에 유난히 조문(弔問)이 잦다 장수(長壽)라 호상(好喪)이겠으나 뉘 집 상가에도 호상이란 없다 여느 꽃은 필 때 향기가 진동한다 아까시꽃은 질 때 향기가 절정이다 장례식장 안까지 꽃향기가 흠씬하다 좋은 계절에 세상을 뜬다는 것은 망자나 산자나 복이거나 슬픈 일이다 죽음에 관한한 봄은 이중성이다 거짓말처럼 어느 날 꽃이 지더라도 거짓말처럼 남은 자들은 또 살아간다 다만 행복했던 날들을 가끔 추억할 뿐이다 2020. 2. 9. 질문 질문 노연화 작년에 스러진 꽃 올해 다시 피어나는 것을 보다 죽음에서 새삶이 생성되는 이치 혼돈 속에서 질서가 생겨난다 통합되고 분리되는 윤회의 고리 나는 지금 어디쯤 걸어가고 있나 밤이 있어 새벽이 탄생하니 밀알이 썩어야만 새순이 돋는구나 분수에 없는 부귀영화를 바랐던가 짧은 생애 명예와 권력을 탐했던가 예순이라는 나이도 조금 늙은 척하며 자주 생각이 깊어지는 까닭에 나 다시 돌아갈 곳 어디인가 묻느니 지나가는 까마귀가 시끄럽다 짖는다 다 부질없다 의문조차 욕심이려니 자족하고 살면 두려움도 깃털같아 고맙고 미안하고 황송할 따름 이생에서 지금 존재한다는 것이! 사족ㅡ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를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자 심미아스와 케베스.. 2020. 2. 8. 걷는 사람 2020. 2. 8. 이전 1 2 3 다음